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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야구를 읽는다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4. 6.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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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구 경기는 어수선했다. KIA 타선이 7-9로 뒤진 9회초 3점을 뽑아 뒤집었지만 마무리 하이로 어센시오가 그 한 점을 지켜주지 못했다. 수비에서 아쉬운 점도 나왔지만 어센시오의 구위도 대단했다고 하기 어려웠다.

KIA 타선이 다시 힘을 냈다. 10회초 김주찬이 2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이번 2점은 지켜줄 것이라 믿었지만 어센시오는 또다시 볼넷과 사구를 연거푸 내줬다. 무사 1·2루 이승엽 타석. 초구가 볼이 되자 KIA 선동열 감독이 기다리지 못했다. 마운드에 최영필(40)이 올라왔다. 1일 등록 뒤 팀이 치른 4경기서 3번째 등판이었다.

최영필이 마운드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10년 말 한화에서 FA 신청을 했다가 미아가 됐다. 1년 동안 멕시코와 일본 독립리그를 거치며 선수 생명을 이었다. 어렵게 2012년 SK와 계약했다. 2012년 53이닝을 던지며 볼넷 10개만 줬다. 2013년이 끝났을 때 SK는 코치직을 제안했고, 최영필은 이를 고사했다.


지난 3월 KIA와 계약했다. 1군 마운드에 다시 서는 데는 또다시 규약이 발목을 잡았다. FA자격 선수가 아닌 방출 선수는 1월 말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신고선수로만 등록이 가능했다. 6월1일이 돼서야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볼카운트 2-2, 최영필은 “잠시 고민했다. 직구에 자신이 있었다. 이승엽의 몸쪽이 비었다. 하지만 무사 1·2루였다. 장타는 단숨에 경기를 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깥쪽 포크볼을 택했다. 조금 밋밋하게 떨어졌다. 이승엽은 이를 2루타로 만들었다. 12-11, 무사 2·3루가 됐다. 경기가 기울었다.

최영필은 “마흔의 투수는 타자와 무턱대고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타자의 스탠스, 팔꿈치의 각도, 리듬감. 그리고 상대의 눈을 읽는다. 더욱 침착한 승부가 계속됐다. 최영필은 박해민에게 중견수 뜬공을 허용해 동점을 만들어줬지만 백정현과 김상수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둘 모두 허를 찔린 헛스윙 삼진이었다. 최영필은 나지완의 홈런으로 1점을 다시 앞선 11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나바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 이승엽에게 맞았던 그 포크볼이 이번에는 조금 더 예리하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박한이 타구를 3루수 이범호가 막아냈지만 아웃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경험이 부족한 이흥련은 높은 직구로 승부했다. 유격수 뜬공이 됐다.

이영욱에게 던진 3구째, 바깥쪽 직구가 2루타가 됐다. 2사에 다시 패전 위기에 몰렸다. 다음 타자는 박석민이었다. 최영필은 포수 백용환에게 다가가 코스를 물었다. 백용환은 “홈플레이트 라인을 잘 타고 들어왔다”고 답했다. 마흔의 투수가 야구를 읽는 법이다. 최영필은 “공을 던지는 타점에 따른 미세조정이 필요했다. 잘 제구된 공은 두 번 맞지 않는다”고 했다. 최영필은 미세조정을 했고, 박석민과 승부했다. 2구째가 중견수 이대형의 머리 위로 떴다. 681일 만에 승리를 따내는 순간이었다. 생 끝에 돌아온 마운드. 4경기에 나와 1승 1홀드. 5이닝 동안 3안타 무실점. 삼진 4개. 복귀 때 “어떤 상황이든 과감한 승부를 하겠다”는 약속처럼. 볼넷은 0. 마흔 살 베테랑 투수가 보여준, 읽는 야구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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