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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가치와 차별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4. 7. 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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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42번은 특별한 번호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한 뒤 이제 누구의 등에도 달 수 없는 번호다. 단순히 42번째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42’는 차별 금지의 상징이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번호다. 야구는 42번을 통해 차별을 철폐한 종목이라는 상징과 훈장을 얻었다.

소설가 홍형진씨가 ‘허핑턴포스트’에서 지적했듯 최근 야구중계 도중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이 나왔다. 야구 강국인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을 폄훼하는 내용이었다. ‘농담’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얘기였다. “포니 택시 같은 데에 열 몇 명씩 막 탄다”는 내용도 있었고 “흑인들이 많아 밤에는 밝은 옷을 입지 않으면 자동차를 몰고 갈 때 구분이 잘 안된다”는 심각한 얘기도 포함됐다.

또 다른 해설위원도 문제가 될 만한 얘기들을 언급했다. “히스패닉이라 시끄럽고 다혈질이다” “멕시칸이라 성급하다” “저 선수는 멕시칸인데도 침착하다” 등이다.

단순히 ‘인상’에 대한 ‘평가’의 선을 넘었다. 오만과 편견의 문제이고, 심각한 수준의 오류이자 편가르기의 문제다.

거꾸로 풀면 상황은 명확해진다. 미국 중계진이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 중 “‘빨리빨리’만 외치는 한국인답지 않게 마운드 위에서 침착하다”고 얘기하거나 “찢어진 눈을 갖고도 예리한 제구력을 지녔다”고 한다면 어떨까. “한국에서는 출퇴근 때 고속도로를 다니는 버스에 사람들이 매달리듯 꽉 차서 타고 다닌다. 이제 규제를 시작했는데, 반대가 심하다더라”며 웃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재키 로빈슨과 팀 동료였던 피 위 리즈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피부색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차별은 ‘미움’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조롱’과 ‘유머’는 더욱 심각한 차별이 될 수 있다.

그 바탕에 야구의 ‘사대주의’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리그에 등급이 있고, 하위 리그가 어찌 상위 리그를 넘볼 수 있느냐는 색깔 입힌 시선이다. 실제로 일부 외국인 선수들이 보여준 행동에서는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의 ‘차이’ 대신 ‘차별’이 드러났다. 거꾸로 나타나는 ‘역차별’도 심심치 않게 존재했다.

야구는 경기의 승부와 그 결과만을 파는 산업이 아니다. 문화와 경험을 파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야구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 ‘차별’을 향한 끝없는 경계는 야구가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시즌 초반 두산의 호르헤 칸투는 트위터상의 실수로 공식 사과를 했다. 기자회견에 이어 타석에서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이 역시 시작은 ‘유머’였고 ‘농담’이었지만 칸투는 그 실수를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확실하게 사과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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