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반, 두산 송일수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이례적으로 한국말로 답했다. “솔직히 기분 나빠요.”
번트 논란에 대한 답이었다. 전년 대비 득점이 21%나 증가한 ‘타고투저’의 시즌. 번트가 지나치게 많다는 팬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두산의 팀 타율은 2할9푼3리로 리그 3위였다. 송 감독은 “번트 작전은 ‘결과론’이다. 결과가 좋으면 칭찬받고 나쁘면 비난받는 작전”이라면서도 “투수를 흔들 수 있는 작전 중 하나다. 필요하면 계속 댈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산은 올 시즌 희생번트 81개를 성공시켰다. SK(91개)에 이어 리그에서 2번째로 많았다. 타고투저 시즌의 번트는 한때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22일 숙명여대에서 한국야구학회 가을 학술대회가 열렸다. 토론발표 주제는 논란이 됐던 ‘번트’였다. 번트는 야구통계 전문가 세이버메트리션들이 주장하는 대로 쓸모없는 작전일까. 아니면 송일수 감독의 말대로 ‘투수를 흔드는 작전’일까.
타고투저 시즌에 번트는 줄어들었다. 전년 677개였던 희생번트는 올 시즌 613개로 9.5% 줄었다. 희생번트를 적게 댄 팀은 한화(50개)와 NC(44개)였다. 팀 타율 3할1리(1위), 팀 장타율 0.473(2위)의 삼성은 희생번트 76개를 대 4번째로 많았다. 박한이의 희생번트 24개는 리그 2위였다. 박한이는 무사 1루 타율이 6할1푼9리, OPS(출루율+장타율)가 1.446이나 될 정도로 강했지만 기꺼이 희생번트를 댔다.
삼성의 번트는 불펜이 강한 팀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이 기록한 희생번트 4개는 합계 10점으로 이어졌다. 상대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일반적으로 무사 1루 희생번트 무용론은 상황별 기대 득점·기대 확률에 근거한다. 한국프로야구 무사 1루 때 기대 득점은 0.868점, 득점 확률은 42.9%다. 번트를 성공시킨 결과인 1사 2루에서 기대 득점은 0.708점으로 떨어지고, 득점 확률 역시 41.4%로 감소한다.
복잡한 계산이 더해지면 상황이 조금 바뀐다. 메이저리그 야구 통계를 분석한 톰 탱고의 ‘더북’(The book)에 따르면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시도했을 때 단순히 1사 2루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석에 포함시켰다. 2000~2004년 내셔널리그 기록 기준 분석 결과 희생번트를 시도했을 때 기대 득점이 0.831점으로 무사 1루 기대 득점(0.906점)보다는 낮지만 1사 2루(0.700점)보다는 높았다.
‘지독한 투고타저 시즌’일 때 희생번트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더북’의 분석에 따르면 투고타저가 심했던 메이저리그 1960~1970년대 7회 1점차 무사 1루일 때 희생번트는 강공 때보다 승리 확률을 0.4%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므로 희생번트가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를 운영했던 이동현씨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분석을 했다. 번트 작전이 유의미해지기 위해서는 상대 투수가 강하고, 타자가 약할 때라야 했다. 이씨는 투수와 타자를 실력별로 A~E 5단계로 나눠 번트 상황을 분석했다. 최고 단계 A급 투수와 최저 단계 E급 타자가 맞붙은 상황에서는 희생번트가 단순 분석과 달리 기대 득점을 0.044점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득점 확률 역시 4.6%나 높았다. A급 투수가 마운드에 있을 때는 B급 이하 타자는 모두 희생번트를 대는 것이 득점 확률을 높였다. 예컨대 9회말 무사 1루, 마운드에 LG 봉중근, 타석에 SK 조동화라면 희생번트를 대는 것이 정답이다. 기대 득점은 0.048점 높아지고, 득점 확률 역시 4.7% 증가한다. 승리 확률도 2.3% 높아진다.
그렇다면 2014시즌 구단들은 정확히 필요한 상황에 번트를 댔을까. 효율적인 번트 작전을 구사했을까. 이씨가 분석한 결과 두산은 전체 번트 숫자 중 부적절한 번트 비율이 78.57%로 1위였다. 두산은 희생번트 타자의 득점 생산력(RC/27) 평균도 5.219로 가장 높아 비효율적이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조성환 KBS N 해설위원은 “번트는 중요한 작전이다. 단, 번트를 댔을 때 벤치의 동료와 관중석의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번트라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번트는 잘 댄 번트가 아니라 박수를 받는 번트다. 조 위원은 “번트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다음 타자에게, 팬들에게 전해질 수 있어야 진짜 희생번트가 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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