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7시즌을 뛰면서 1269이닝 동안 볼넷 383개를 내줬다. 9이닝당 볼넷으로 따지면 2.72개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은 첫해 9이닝당 2.3개의 볼넷을 기록하더니 올 시즌에는 이를 1.7개까지 뚝 떨어뜨렸다. 메이저리그에 간 뒤 제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걸까. 아니면 한국에서는 대충 던진 걸까.
2014시즌 20승 투수가 된 넥센의 외국인 투수 앤디 밴헤켄은 트리플A에서 9시즌 동안 9이닝당 볼넷 2.7개를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뛴 첫 2시즌 동안 3.2개를 내줬다. 그나마 올 시즌 2.6개를 기록하며 평균치를 3.0개로 떨어뜨렸다. 그래도 트리플A 때보다 높다.
밴헤켄뿐 아니다. NC 외국인 투수 찰리 쉬렉의 9이닝당 볼넷 기록은 ‘환상적’이었다. 트리플A 2시즌 동안 9이닝당 볼넷이 겨우 1.7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뛴 2시즌 동안 2.9개로 늘어났다. 국내 리그 데뷔 첫해 방어율 1위를 했고 올 시즌에도 방어율 4위에 오른 투수인데 볼넷이 트리플A 때보다 늘었다. 묘하게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볼넷이 늘어난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풀이해볼 수 있다. 미국 리그의 타자보다 국내 타자들이 스윙을 아끼는 것이 우선 이유일 수 있다. 국내 타자들은 보다 많은 공을 지켜보는 데 익숙하고, 치고 나가는 것만큼이나 걸어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방망이를 내는 데 소극적이다. 외국인 투수들이 국내 적응 과정에서 “타자들이 유인구에 잘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이 때문이다.
또 마운드의 상태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구장의 마운드 상태는 엉망에 가까웠다. LG에서 뛴 레다메스 리즈가 마무리 변신에 실패한 것은 경기 후반 망가진 마운드에 디딤발 위치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은 무척 좁다. KIA에 몸담았던 데니스 홀튼은 첫 시범경기를 마친 뒤 “한국의 스트라이크존이 꽤 좁다. 어서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속구가 장점인 다수의 외국인 투수들이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 역시 존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 오는 강속구 투수들은 대개 제구에 약점이 있어 좁은 존에 적응하기가 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 ‘좁은 존’에 변화가 생겼다. 프로야구 구단의 한 단장은 “올 시즌 후반기부터 확실히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숫자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리그 전체 투수들의 전반기 9이닝당 볼넷은 3.90개였는데, 후반기에는 3.75개로 줄었다. 제구가 좋은 투수들은 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밴헤켄은 2.74개에서 2.20개로 줄었고, 찰리 역시 3.17개에서 2.67개로 떨어뜨렸다. 리그에서 볼넷을 가장 적게 내주는 삼성 투수진의 9이닝당 볼넷은 전반기 3.21개에서 후반기 2.95개로 감소했다. 아시안게임 휴식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변화가 너무 극적이다. ‘타고투저’ 현상 역시 후반기 들어 완화됐다. 전반기 리그 타율은 0.291이었으나 후반기 타율은 0.286이었다. 9월 이후 리그 타율은 0.279로 더 줄었다.
올 시즌 3시간27분이나 됐던 경기 시간 축소를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고의4구 수신호 대체 같은 건 의미도 소용도 없다. 확대 존이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올 한국시리즈 경기 시간은 3시간18분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스트라이크존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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