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클리블랜드는 그라운드 키퍼(야구장 관리인)를 교체했다. 스티브 오닐 감독은 “이 일에 최고의 전문가가 있다”며 한 인물을 추천했다. 현대 야구의 최고 그라운드 키퍼로 평가받는 에밀 보사드다. 1911년 보사드는 세인트폴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의 직원이었다. 주변의 부탁으로 마이너리그 구장 관리를 도운 게 시작이었다. 한번 맛을 본 마이너리그 구단들은 너도나도 보사드에게 관리를 맡겼다.
보사드가 다른 이들과 달랐던 것은 야구장을 쳐다본 게 아니라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요구사항을 들었고 불만사항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이를 야구장에 반영했다. 보사드가 클리블랜드에 합류한 뒤 맨 처음 한 일 역시 주전 선수들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어떤 선수가 수비에서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봤고, 이야기를 들은 뒤 그라운드의 상태를 딱 맞게 만들었다.
클리블랜드의 빅 워츠는 원래 외야수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이 필요했다. 1루 수비는 처음이었다. 보사드는 빅 워츠의 수비 적응을 위해 홈 구장 1루쪽으로 향하는 내야의 상태를 무르게 만들었다. 땅볼 타구의 속도를 줄여주기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두면 수비가 늘지 않는다. 또 원정 경기 때에는 소용 없다. 그래서 보사드는 빅 워츠의 수비 적응도를 살피며 조금씩 1루를 향하는 내야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첫 시즌이 끝나기 전 빅 워츠는 리그 평균 이상의 1루 수비를 갖추게 됐다. 데뷔 후 10번째 시즌 만에 MVP 투표 9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MVP 투표 6위까지 순위가 올랐다. 6년만에 올스타에도 뽑혔다.
보사드는 팀 전력의 모든 것을 고려했다. 야수들의 수비능력, 타자들의 타구 스피드, 투수들의 땅볼 성향 등을 계산했다. 1948년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전체적으로 물렁했던 그라운드는 1950년대 중반 팀 컬러가 바뀌면서 다시 딱딱해졌다. 투수 스타일에 따라 그라운드 상태를 매일 바꿀 정도로 노련했다. 우리 팀의 선발 투수가 땅볼 유도가 많은 투수라면 그라운드를 무르게 했다가 다음날 상대 선발이 땅볼 투수라면 다시 딱딱하게 만드는 일이 자유자재로 이뤄졌다. 에밀 보사드의 세 아들 해럴드·마샬·진은 모두 가업을 이었고, 각각 다른 구단으로 흩어졌다. 손자인 로저 보사드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그라운드 키퍼를 지냈다.
야구의 승리 확률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살핌으로써 높아진다. 삼성의 통합우승 4연패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전력분석 프로그램 ‘스타비스’로 그라운드 안을 꼼꼼히 살폈다. 상대 투구를 기록할 때 포수의 위치와 다르게 들어가는 공을 ‘역구’로 따로 계산했다.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 성향도 파악해 투수들에게 전달했다. 넥센의 준우승 역시 다르지 않다. 넥센은 목동구장을 살폈고 최적화된 팀을 구성했다. 야수들의 타구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최적화된 운동 프로그램을 짰다. 3위 NC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의 ‘세이버메트리션’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2014 프로야구를 결산하는 한 단어는 그래서 ‘CCTV’다. 강팀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CCTV를 야구에, 그라운드 안에 맞춰두고 꼼꼼히 승리를 위한 조건을 살폈다. 반면 롯데가 실패한 것은 그 CCTV로 야구장 밖을 줄기차게 살폈기 때문이다. 밖에서 이유를 찾아 끌어다 붙이지 말고, 안을 제대로 살펴 이유를 찾을 것. 2014 프로야구 CCTV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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