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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감독에게 선배코치란?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8. 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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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마산 NC전. 두산이 8-3으로 앞선 8회초 선두타자 김재호는 2루 땅볼로 아웃됐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두산 김태형 감독으로부터 ‘호출’받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김재호는 뒷짐을 지고 서서 김 감독의 말을 듣고 있었다. 김 감독의 표정은 유지훤 수석코치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김재호가 질책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김재호는 2루 땅볼 때 1루까지 전력질주하지 않았다. 명백한 아웃 상황, 천천히 달렸고, 아웃이 됐다. 상황이 그려졌다. 5점 차로 앞섰다 하더라도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메시지로 여겨졌다. 조지 브렛, 데릭 지터, 그리고 양준혁까지. 대선수를 만드는 기본은 언제나 ‘전력질주’를 한다는 것이었다.

팀이 치른 93경기 중 88경기를 책임져 준 주전 유격수의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 초보 감독의 엄격함이었을까. 혹시나 작은 틈을 시작으로 팀 분위기에 균열이 생길까 걱정하는 치밀함이었을까. 순위 다툼이 치열한 상대, 5점 차로 이기는 경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전 유격수를 불러다 세운 뒤 혼냄으로써 팀 전체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주려 했을까.




김태형 감독은 “절대 아니다. 만약 혼내려 했으면 따로 불러다 하지 경기 중에 그렇게 안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감독은 “힘내라고 했다.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힘든 모습 보여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며 “고참이 처져 있으면 어린 선수들이 더 지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재호 역시 “그때 혼난 게 아니다. 감독님으로부터 격려를 받는 장면이었다. 정말 힘이 든 때여서 표정이 그렇다보니 다들 오해하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태형 감독은 롯데 이종운 감독과 함께 올 시즌 ‘데뷔’한 초보 감독이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팀을 빠르게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전과 후보의 선이 뚜렷하면서도 그 선을 넘나드는 변화에 있어서 잡음이 줄었다. 공감하는 수준에서의 변화가 구단 안팎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단지 프랜차이즈 출신이어서, 구단의 전통과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알아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 감독이 선수 시절부터 보여줬던 ‘카리스마’ 때문만도 아니다. 군기로 팀을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거꾸로’에 가깝다.

두산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조금 독특하다. 유지훤 수석코치는 김 감독과 띠동갑이다. 12살이 더 많다. 박철우 타격코치가 3살 더 많고, 한용덕 투수코치는 2살 형이다. 강석천 수비코치는 1967년생 동갑이지만 김 감독의 졸업이 늦어 학번차로 형이다. 코칭스태프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석, 투수, 타격, 수비코치가 모두 감독보다 나이가 많다.

아무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감독이 다시 손사래를 쳤다. 김 감독은 “내가 모두 받아들인 일이다. 모두들 해당 분야 베테랑인 점도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초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선배님들한테 할 얘기 못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대신 선배님들과 함께하면 초보 감독이 흥분했을 때 아무래도 한번 더 생각하고 참을 수 있지 않겠냐는 계산을 했다”며 웃었다.

조선시대 선비 이상의는 스스로의 몸에 방울을 달아 몸가짐을 경계했다고 한다.(패령자계·佩鈴自戒) 김 감독에게 선배 코치는 스스로 단 방울이다. 방울소리를 경계하며 팀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안정감을 가져왔다. 초보 감독의 성적 차이는 어쩌면 거기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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