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점 하나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치밀한 계산이 더해졌다. ‘선’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일 뿐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사물을 선이 아닌 점으로 표현했다. 신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가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는 데 2년이 걸렸다.
쇠라는 ‘점묘화가’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를 선이 아닌 점으로 표시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쇠라에게 붙은 이름은 ‘신(新)인상파’지만, 오히려 사실주의에 가까웠다. 점은 모든 사물과 사실의 근본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톰 버두치는 LA 다저스의 우완 에이스 잭 그레인키에 대해 ‘점묘화가’라고 표현했다. 버두치는 “쇠라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는 데 2년이 걸렸듯, 투구의 점묘화가 잭 그레인키는 저니맨 구원투수로부터 영감을 얻은 완벽하고 기묘한 자신의 투구를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다”고 SI 최신호를 통해 적었다.
버두치의 말대로 그레인키는 ‘점묘투수’다. 쇠라가 점을 찍어 세상을 표현하듯, 그레인키는 점을 찍는 듯한 완벽한 제구로 자신의 투구 스타일을 완성한다. 그레인키는 ‘강박’에 가까운 제구 집착으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 타이인 선발 6경기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야구에 관한 한 천재다. 버두치에 따르면 그레인키는 지금까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던진 3만여개의 투구를 거의 모두 기억한다. 자신이 던지는 5가지 구종(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싱커)의 제구가 완벽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구종에 대해 자기보다 나은 투구를 하는 투수가 있다면 끊임없이 이를 분석한다. 세이버메트릭스라 불리는 야구 통계에도 해박하다.
그레인키는 체인지업을 라몬 라미레스라는 저니맨 투수로부터 배웠다. 체인지업에 대한 기존 통념은 직구와 구속 차이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레인키는 거꾸로 라미레스의 ‘빠른 체인지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레인키는 “제구가 안되는 느린 체인지업보다, 제구를 할 수 있는 빠른 체인지업이 더 낫다. 실투에 따른 장타 허용을 걱정하느니 실투 자체를 줄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레인키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3.5마일(약 5~6㎞)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체인지업은 헛스윙을 목표로 하는 공이 아니라 정확히 때리지 못하도록 하는 공이기 때문이다. 그레인키는 2013시즌부터 슬라이더의 그립도 바꿨다. 컷 패스트볼처럼 쥐고 슬라이더의 회전을 넣는다. 보다 나은 제구를 위한 변신이다. 올 시즌 그레인키가 슬라이더를 던져 맞은 홈런은 딱 1개다.
끝없는 발명과 변신은 그레인키를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만들었다. 그레인키는 13승3패, 방어율 1.67을 기록 중이다.
넥센 마무리 투수 손승락은 지난 19일 KT전에서 홈런을 허용하는 등 0.1이닝 동안 3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그날 밤 염경엽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노력해서 제 완벽한 폼을 찾겠습니다”라는 문자였다.
그러나 손승락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것을 되찾는 게 아니라 그레인키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끝없는 변신일지도 모른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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