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애리조나의 폴 골드슈미트(28)는 치고 달리고 던지는 모든 것에 ‘성실’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듯한 선수다. 스윙을 한 뒤 1루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4.4초다. 메이저리그 우타자 중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스카우트들이 ‘보통 수준’이라고 평가했던 1루 수비가 데뷔 후 3년 만에 ‘골드글러브’ 수상 수준으로 성장했다. 2009년 입단하자마자 수비 코치를 찾아가 “골드글러브 1루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갈고 닦은 결과다.
신인 지명 순위가 낮았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전체 246번째로 애리조나에 지명됐다. 애리조나는 골드슈미트에 앞서 포지션이 겹치는 코너 내야수만 5명을 뽑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이를 모두 이겨냈다. 골드슈미트는 올시즌 내셔널리그 타격 3위, 홈런 6위, 타점 1위에 올라있다. 강력한 MVP 후보 중 한 명이다.
심지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 신인 드래프트 때문에 텍사스 주립대를 중퇴한 골드슈미트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에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학업을 이어갔다. 온라인 과정 수강을 위해 무선 인터넷이 잘 터지는 원정 경기 호텔 로비에 앉아 공부를 할 정도로 열심인 끝에 2009년 9월, 경영학 학위를 땄는데, 그해 골드슈미트는 야구에서도 내셔널리그 MVP 후보 2위에 오를 만큼 맹활약을 펼쳤다.
물론, 독서도 열심이다. 골드슈미트는 “<행복의 특권>이라는 책을 보면 행복할 때 시야가 넓어지고 시선의 집중력도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후 골드슈미트는 공을 잘 보기 위해 경기 전 20분 동안 코미디 영화를 본 뒤 그라운드에 나서는 중이다. <백만장자 빌리>라는 영화는 거의 100번 가까이 봤다.
SK 포수 정상호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다. 다만 경기 전이 아니라 잠들기 전이다.
정상호는 “경기 중 볼배합 등이 꿈속에서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몇년 전부터 자기 전에 마음을 비우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슈미트와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정상호 역시 코미디가 루틴이 됐다. 매일 치르는 야구는 잊어야 사는 종목이다. ‘망각’은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의 주인공 거스 로벨(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훌륭한 스카우트는 야구의 심장”이라며 “컴퓨터는 선수의 숨은 소질을 알지 못해. 주자 뒤로 공을 쳐낼 수 있는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돌아올 놈인지 알 수 없지”라고 말했다.
정상호는 ‘망각’의 필요성을 고통스럽게 배웠다. 2009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2차전을 모두 내준 뒤 집 앞 놀이터에 앉았다.
소주 2병에 과자 한 봉지. 정상호는 소주 1병을 병째 들이켠 뒤 “1패”라고 외쳤고, 또 1병을 마신 뒤 “또 1패”라고 외쳤다. 2패를 모두 쓰린 속으로 부어 넣은 뒤 툭툭 털었다. SK는 2패 뒤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2패에 매여있었다면, 이어질 3연승이 불가능했다.
망각이 필수 덕목이라는 점에서 KT 김태훈은 대형 타자가 될 자질을 갖췄다. 고졸 신인 김태훈은 지난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때렸다.
홈팀 한화의 도움으로 영원히 간직할 만한 1호 홈런공을 팬으로부터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경기를 졌고, 김태훈은 그 공을 깜빡하고 대전구장에 두고 오는 바람에 잃어버렸다.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태훈이 쿨하게 답했다. “1호는 괜찮아요. 나중에 100호 홈런볼을 기념으로 챙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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