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보스턴 글로브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전성기를 맞는 나이를 조사했다.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WAR)를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타자들의 전성기는 26~28세가 가장 많았다.
33세가 넘어서면 WAR 2.0을 넘을 확률이 뚝 떨어졌다. 선발투수들의 전성기는 대개 25~26세였다.
39세가 되면 전성기의 확률은 뚝 떨어진다. 물론 상식을 뛰어넘는 선수들은 어느 리그에나 존재한다. KBO리그에서는 삼성 이승엽(39)이 그런 존재다.
이승엽은 7일 현재 타율 0.345, 26홈런, 89타점을 기록 중이다. 타율과 홈런은 리그 6위다.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여서 홈런 숫자가 주는 울림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타율 0.345는 눈을 다시 한 번 씻고 살펴보게 한다. 우리 나이 마흔, 이승엽은 자신의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을 기록 중이다. 그의 이전 개인 최고 타율은 1997년 기록한 0.329다. 후반기 상승세는 더욱 무섭다. 이승엽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타율 0.398을 기록 중이다. NC 테임즈(0.415)
에 이어 2위의 기록이다. 후반기에 때린 홈런은 11개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1.159로 테임즈, 박병호에 이은 리그 3위다.
이승엽은 “그냥 하다 보니까 이런 기록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냥 간결하게 때리고 있다. 이제는 야구 실력이 많이 줄었다”며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승엽은 그의 홈런 숫자와 타구의 비거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을 뿐, 때리는 기술에 있어 천재적인 타자였다. 홈런왕 시절에도 어려운 코스의 공을 정확히 맞히고 힘을 실어 날렸다.
타선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후배들과 나눈 덕분이다. 이승엽은 “이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줄었다. 나는 삼성 타선의 6번 타자 아닌가”라며 “후배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 프로는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내가 지금 타율이라도 높지 않으면 지금의 삼성 타선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부담감을 나누는 대신 자존심을 세우는 중이다. 타율 0.345는 구자욱(0.348)에 이어 팀내 2위다.
타격을 위해 방망이를 다시 세웠다. 지난 시즌 백스윙을 짧게 만들기 위해 팔꿈치를 낮추고 방망이를 눕혔던 이승엽은 올시즌 왼쪽 팔꿈치를 들어올리고 방망이를 세웠다.
이승엽은 “가볍게 치려고 하고 있다”고 했지만 애써 타구를 들어올리려 힘을 쓰지 않는 가벼움이 오히려 강한 타구의 안타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홈런뿐만 아니라 안타 역시 기본은 강한 타구다.
성장은 고집이 아닌 변화에서 나온다. 과거의 성공사례에 집착해 그때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만 애를 쓰면 변해가는 세상 속에 뒤처지기 마련이다. 야구든, 정치든, 경제든 마찬가지다. ‘그땐 그랬지’는 소파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한 번쯤 내뱉는 푸념만으로 족하다. ‘그땐 됐는데 왜 지금은’이라는 한탄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때, 홈런으로 온 나라 팬들의 자존심을 세웠던 ‘국민타자’ 이승엽이 우리 나이 마흔,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자신의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또 한 번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2015시즌, 전설의 타자가 기록하는 또 하나의 전설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39세 이상 타자가 3할3푼,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기록한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그 유일한 기록을 세운 선수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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