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신인 1차지명에서 LG는 성남고 출신 박병호를 선택했다. 고교 시절 2경기에 걸쳐 4연타석 홈런을 때린 타자였다. LG는 1990년 팀 창단 이래 ‘우타 거포’ 부재를 고민했던 팀이었다.
같은 해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LG는 부산고 출신 정의윤을 지명했다. 정의윤 역시 고교 시절 만루에서도 고의 4구를 얻어냈던 타자였다.
미래의 4번타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던 팀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다. 박병호는 2012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뒤 KBO리그에서 한 번도 없었던 4년 연속 홈런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정의윤 역시 올시즌 SK로 트레이드된 뒤 홈런 수가 늘어나고 있다. 정의윤은 14일 현재 홈런 9개로 데뷔 첫해 때렸던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8개)을 넘어섰다.
LG의 4번타자는 유망주들의 늪이었다. 우타 거포뿐만 아니라 좌타 거포 역시 뒷걸음쳤다. 이병규(7번)는 올시즌 2할4푼3리, 12홈런에 머물렀다. 기회가, 기다림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거꾸로 기대가, 희망이, 그에 따른 압박이 지나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타자가 2015시즌 막판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다. 입단 4년차, 외야수 서상우(26)다.
서상우는 14일 현재 타율 0.358을 기록 중이다. OPS(출루율+장타율) 0.908은 올시즌 퇴출된 잭 한나한(0.923)을 빼면 팀 내 1위다. 한화 김정준 전력분석 코치는 “타석에서의 준비자세가 잘 갖춰져 있다. 자기만의 타격 포인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LG 서용빈 타격 코치는 “맞히는 능력을 갖췄다. 두산 김현수에 가까운 타자지만, 삼성 최형우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물론 앞선 유망주들 역시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서상우가 걸어온 길은 선배들과 조금 다르다. 주목을 받기보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선수였다.
대학 시절까지 줄곧 포수였다. 서상우는 “포수 말고 다른 포지션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교 시절 키 1m82에 몸무게가 75㎏에 그쳤다. 당연하게도, 고교 졸업 때 지명을 받지 못했다. 2008년 드래프트는 서건창도 지명되지 않던 때였다. 건국대 졸업 때 가까스로 LG에 지명을 받았다. 2차 9라운드, 전체 80번째. 포수가 아닌 외야수였다. LG에서 가장 낮은 순위였다. 서상우는 “나 보고 문 닫고 들어왔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어쩌면 시련과 변화에 익숙한 것이 장점이다. 대학 3학년 때, “야구가 너무 안돼 스트레스가 심했다. 미친 듯이 먹어대다 보니 몸무게가 120㎏까지 늘어났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만들어 지금은 1m87, 96㎏이다. “학생 때는 너무 말라서, 콘택트 위주의 타자였다. 맞히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약점은 강점이 됐다. 맞히는 감각에 이제 힘이 더해졌다. 그렇게 정확히 맞혀 넘긴 홈런이 올시즌 3개다.
LG의 4번타자는 어쩌면 야당 대표보다 더 힘든 자리다. 지나친 기대와, 심각한 우려가 항상 함께한다. 작은 실수에도 비난보다 더 무서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시선이 쏟아진다.
서상우 역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다만, 다른 점은 이미 많은 가시밭길을 거쳐왔다는 점이다.
세인트루이스 감독 마이크 매시니는 “힘을 내, 너는 할 수 있어”라는 외침조차 압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찬 응원이 아니라 조용한 격려와 꾸준한 인내일지도 모른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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