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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투저와 야신의 변화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10.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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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2015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전반기 돌풍과 함께 관중 수와 시청률이 폭등했고, 후반기 추락과 함께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야신’이라 불렸던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대와 실망, 환호와 비난이 얽히고설켰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는 김 감독의 지론 속에 ‘5강 실패’라는 성적표는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72승) 이후 최다승(68승)과 2008년(0.508) 이후 최고 승률(0.472)에도 불구하고 선수 혹사 논란과 함께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김 감독으로서도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실패는 처음 있는 일이다. 팀을 맡을 때마다 첫해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고,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이번 실패에 대해 성적 욕심과 압박이 마운드 운영에 대한 무리수로 이어졌다는 지적과 고양 원더스 시절 3년이 경기 감각을 무디게 했다는 해석도 따랐다.

이용균 기자의 베이스볼 라운지
또 하나의 지적은 ‘김성근식 야구’를 증명하려는 고집에 대한 평가였다. 혹사에 가까운 마운드 운영, 특타로 대표되는 훈련량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없이 김 감독은 권혁과 박정진을 마운드에 올렸고, 경기 전 특타와 야간 특타를 강행했다.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시즌 최종 성적표로 따지자면 결국 실패에 가깝다.

지금까지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화려한 성공만 기억되지만, 씁쓸한 실패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리그의 환경 변화와 맥이 닿는다.

1988년 OB 감독일 때 김 감독은 5위로 떨어졌다. 그해 리그 전체 방어율 3.80은 리그 출범 첫해(3.82)를 제외하고 가장 높았다. 1991년과 1992년 삼성 감독일 때 역시 팀 전력에 비해 낮은 순위(3위, 4위)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때 리그 방어율은 각각 3.96, 4.32로 출범 이후 가장 높았다.

리그 환경이 ‘타고투저’일 때 김 감독의 야구는 힘이 떨어졌다. 반면 ‘투고타저’일 때 김 감독의 야구는 힘을 발휘했다. 1996년 쌍방울 돌풍을 일으켰을 때 리그 방어율은 3.68로 떨어졌다. 1999년 김 감독 최악의 승률 0.224는 쌍방울의 자금난과 함께 리그에 몰아닥친 충격적 타고투저(리그 방어율 4.98)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2002년 LG를 이끌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을 때 리그 방어율은 전년(4.71) 대비 0.5가 줄어든 4.24였다. 2007년 SK를 우승시켰을 때 리그 방어율은 모처럼 4점대 이하로 내려간 3.91이었다. 우승을 놓쳤던 2009년, 리그 방어율 4.80은 타고투저를 뜻하는 숫자였다. KBO리그 2014시즌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였다. 리그 방어율이 5.21이나 됐다. 2015시즌 역시 4.88로 만만치 않았다. 김 감독의 야구는 ‘압박’의 야구다. 1점을 짜내 그 리드를 바탕으로 상대를 조여들어간다. 번트는 김 감독의 강력한 무기였다. ‘벌떼 불펜’ 역시 1점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하는 운영방식이었다. 시즌 내내 여러 차례 나왔던, 무리해 보였던 홈 주루사 역시 ‘저득점 환경’에서 효과를 보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타고투저 환경에서는 압박의 효과가 크지 않다.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을 겪은 상대팀 선수들은 김 감독의 번트에 흔들리지 않았다. 줄 점수는 주고, 나중에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편하게 플레이했다.

2016시즌 역시 타고투저 흐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성근식 야구’의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시즌 막판, 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한화는 올시즌 144경기에서 139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한 팀이었다. 시즌 마지막 8경기는 더욱 치열한 승부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희생번트가 6개로 23%가량 줄었다. 그 기간 한화는 5승3패를 기록했다. 홈 주루사 몇 개가 없었다면 6승2패, 어쩌면 7승1패가 될 수도 있었다.

김 감독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1군 선수들에게 15일의 휴가를 줬다. “감독 생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 감독의 지론대로 발전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변화의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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