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이름난 외야수 커티스 그랜더슨은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추신수(33·텍사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랜더슨은 “추신수는 대단한 선수다. 기습 번트로 안타를 만든 뒤 다음 타석에서 홈런을 때릴 수 있는 타자”라고 평가했다.
추신수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재다능’이다. 그랜더슨의 말대로 번트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장타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텍사스가 추신수에게 7년간 1억3000만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계약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추신수의 능력 덕분이다. 리그 환경이, 요즘 메이저리그처럼 ‘투고타저’라면 추신수의 출루 능력이 팀에 보탬이 된다. 반대로 ‘타고투저’로 바뀐다면, 추신수의 장타력에 기대를 걸 수 있다.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 역시 추신수의 장점으로 “1번부터 8번까지 모든 타순에 기용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을 꼽았다. 추신수는 텍사스의 2번타자로 뛰고 있다. 후반기 완전히 회복한 출루 능력을 바탕으로 애드리안 벨트레-프린스 필더로 이어지는 중심타선 앞에서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고, 텍사스의 지구 우승을 이끌었다.
강정호(28·피츠버그)가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일본 프로야구 출신 내야수들과 달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수비만 잘하는 유격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격수는 수비만 잘하면 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강정호는 장타력을 갖췄다. 장타력을 갖춘 준수한 내야수를, 피츠버그는 요긴하게 활용했다. 유격수 자리가 비면 유격수에, 3루수 자리가 비면 3루수 자리에 기용했다. 좌투수를 상대로 한 대타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강정호는 이내 주전 자리를 꿰찼고, 비록 시즌 막판 불의의 부상을 당했지만 피츠버그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일본 프로야구의 세기와 미국 프로야구의 힘을 고루 갖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KBO리그는 일본 스타일의 야구에다 미국 스타일의 야구가 경쟁하면서 발전했다. 세기와 힘이 서로 충돌하고 우위를 다투면서 리그 전체가 한 단계 상승했다.
야구 경기에서 팀 라인업의 다양성은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삼성이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데는 타선의 밸런스가 결정적이었다. 박해민, 김상수 등 빠른 타자들이 있고, 최형우, 이승엽 등 좌타 거포에 박석민이라는 우타 거포를 갖췄다. 박한이, 구자욱 등의 중거리 타자들이 타선의 요소요소에 배치됐다. 워낙 잘 치는 타선이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 득점을 올리는 다양한 루트까지 갖췄다.
‘올바른 야구’는 1번부터 9번까지 박병호로 구성된 야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야구’는 1번부터 9번까지 도루왕 박해민으로 구성된 야구도 아니다.
야구는 다양성의 종목이다. 데릭 지터는 “야구를 하기 위해 키가 2m가 돼야 할 필요도, 덩치가 아주 클 필요도 없다. 모두가 할 수 있는 종목”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선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야구를 한다. 투수의 투구폼과, 타자의 타격폼은 ‘올바름’이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이 개인에 따라 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 다른 야구가 야구를 발전시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올바른 야구’랍시고 모든 선수에게 같은 투구폼, 같은 타격폼을 강요할 때 벌어진다. 누군가는 성공하겠지만 이 때문에 아예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코치를 두고 야구판에서는 ‘최악의 코치’라고 부른다. ‘감독, 코치가 하늘’이던 옛날과 달라서 그런 코치에게는 학부모들이 선수를 안 맡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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