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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와 구로다 그리고 박병호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2. 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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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이치로는 자기충족적인 야구 선수다. 자신에 대한 엄격한 훈련과 세밀한 조정을 통해 성적을 만들어낸다.

방망이는 항온·항습장치가 달린 특별한 케이스에 담아 이동한다. 스파이크는 발바닥에 달린 스터드(징)의 위치를 미세 조정해 최적의 스타트와 스피드를 얻었다. 방망이와 스파이크 모두 특별한 장인들이 만든 제품이다.

시즌 준비도 자신의 노하우 안에서 한다. 이치로는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첫 한 달에 이르기까지 스윙에 대한 미세 조정을 통해 그 시즌에 맞는 스윙을 완성시켜 가는 스타일이다. 한 번 만들어진 스윙은 시즌 내내 안타 200개 안팎을 만들어낸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바꾼 타격폼, ‘진자 타법’ 역시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킨 결과다. 이치로 야구는 자신에서 시작해 밖을 향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일본프로야구 출신 대표적인 투수는 구로다 히로키다. 대부분의 일본 출신 투수들이 ‘3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구로다는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뒀다.

구로다는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를 거치는 7시즌 동안 79승79패, 방어율 3.45를 기록했다. 승패와 방어율보다 매 시즌 평균 30경기를 넘긴 212번의 선발 등판이 더욱 의미가 있다. 머리에 타구를 맞은 두 번째 시즌(2009년·20경기 선발)을 제외하고 모든 시즌에서 30경기 이상 선발로 등판했다.


구로다의 야구는 이치로와 반대였다. 밖에서 시작해 안을 향하는 야구다. 구로다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2008시즌 LA 다저스에서 뛸 때 밖을 향해 자신을 변화시켰다. 구로다는 “미국에서는 미국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해온 오랜 야구보다 새로 시작할 새로운 야구에 자신을 맞췄다.

‘미국의 야구’라는 말에서 야구보다 미국에 방점이 찍혔다. 삶이 야구에 우선했다.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자녀들은 미국 공립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다저스 단장이던 네드 콜레티는 “구로다는 미국에 와서 단지 공을 던지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구로다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새로운 나라에 정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구로다는 팀에도 빠르게 녹아들어갔다. 구로다의 캐치볼 상대는 항상 클레이튼 커쇼였다. 구로다의 계약 마지막 해였던 2011시즌 막판, 시즌 등판이 모두 끝난 커쇼에 대해 구단은 캐치볼도 금지했다. 그러나 구로다의 마지막 등판을 앞두고, 커쇼는 캐치볼 상대를 자청했다. 커쇼는 캐치볼 뒤 구로다에게 “내년에도 함께 뛰고 싶다”고 했고, 구로다는 “커쇼와 다저스를 상대로 던지고 싶지 않아”서 내셔널리그 팀들의 더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아메리칸리그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적응은 단지 언어와 음식, 기후에 익숙해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치로처럼 메이저리그를 누를 수 있도록 단련하거나, 구로다처럼 모든 면에서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다. 미네소타 직원들은 팬페스트에 참가한 박병호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이제 박병호가 답할 차례다. 야구를 완성시키는 것만큼이나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게 필요하다. 4년 혹은 5년 뒤 브라이언 도저가, 미겔 사노가 “이 팀에서 함께 더 뛰자”고 얘기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 홈런 숫자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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