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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 향한 열광과 분노 사이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4. 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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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한화 이글스’와 ‘김성근 감독’은 열광의 대상이었다. 한 한화 팬은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에서 ‘한화 김성근’을 검색해서 새 뉴스를 찾아 보는 게 낙”이라고 했다. 마무리 캠프에서 쏟아지는 한화 선수들의 훈련 사진은 화보처럼 인터넷을 떠돌았다. 흙투성이가 된 한화 선수들의 유니폼은 마치 교회 벽을 장식한 성화(聖畵)처럼 한화의 변신과 그에 따른 기대를 상징했다.

시범경기는 물론이고, 정규시즌에도 매진이 이어졌다. 팬들의 기대감이 한화 야구에, 김성근 감독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투사됐다.

1년이 흘렀고, 열광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향하는 듯하다. 여전히 팬들은 야구장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한화 특유의 ‘육성응원’을 펼치고 있지만 일부 거친 팬들은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경기장 바깥에 걸었다. 단지 초반 성적 부진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한화 팬들은 김 감독의 영입을 통해 순위 향상은 물론 무기력했던 한화 야구의 변화를 꿈꿨다. 당시 시범경기를 찾은 한 팬은 “지난 시즌의 한화는 야수 3명이 모이면 아무도 공 못 잡고 놓치는 팀이었다. 김 감독님이 온 뒤 달라졌다. 수비가 달라지지 않았나”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6시즌 동안 5번 꼴찌를 한 팀의 팬이 가진 ‘패배감’을 넘은 ‘무력감’을 해소시켜 줄 희망의 대상이었다. 또 다른 팬은 “5강, 우승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팀이 달라지는지가 더 궁금하다. 한화 팬들 잘 아시지 않나, 오늘 져서 화나도 내일 다시 응원하는 게 우리 한화 팬”이라며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야구는 ‘지옥 훈련’으로 상징되는 ‘혹독한 노력’의 야구였다. 이 이미지는 노동시장에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청년들의 욕망과 절망, 그 사이의 코드와 맞닿는 지점이 있었다. 이름값과 몸값에 개의치 않은 채 노력의 양을 따져 선수를 기용하는 김 감독 특유의 야구는 사회적 계급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부작용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노력’이 ‘윤리’로 기능하는 한국 사회 청년 문화의 감수성을 건드리고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한화 팬 정찬호씨(23)는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살지 않아도 잘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 내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6시즌 초반 한화를 향한 비난은 3승16패의 성적이 아니라 ‘노력을 통한 성공’이라는 기대에 대한 배반에서 비롯된다. 2007년 우승으로 빛난 SK에서의 야구와 이후 고양 원더스가 표방했던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청춘들에게 ‘희망의 야구’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 후반기에 보여준 선수 기용은 노력보다는 이름값을 바탕으로 한 몇몇 선수들의 쥐어짜기로 비쳤다.

스토브리그 동안 비싼 선수들을 영입하며 유망주들이 팀을 떠나야 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선수들 역시 어린 기대주가 아닌 즉시 전력 베테랑들이었다. 그 틈에 또다시 유망주들이 다른 팀으로 떠났다. 청년의 기회를 빼앗은 ‘낙하산’으로 보일 수 있다.

‘특타’로 대표되는 경기 전후의 훈련은 성장을 위한 노력이 아닌 무의미한 반복의 ‘노오력’으로 읽힌다. 선발의 이른 강판, 실책 뒤 교체는 치밀한 경기 운영이 아니라 ‘찍히면 잘린다’는 한국 사회의 무시무시한 노동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합리적 설명을 필요로 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지지를 받았던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합리적 설명 때문이었다.

한화는 지난 시즌부터 ‘불꽃 한화’를 내세웠다. 이 불꽃이 청춘의 열정이 아닌 청춘을 잡아먹는 지옥불로 읽힌다면, 최악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총선 결과가 그랬듯, 1승이 아니라 희망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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